“당신은 오늘 울린 재난문자의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5월 28일 3시 기준 서소문고가 철거공사 현장의 모습 ©류성민 기자
5월 26일 오후 2시 33분,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일부가 붕괴했다. 굉음과 함께 내려앉은 고가차도로 인해 세 명이 사망했고 세 명은 중상을 입었다. 사고의 여파로 경의중앙선은 운행을 중단했고, 구간 통행은 마비됐다. 사고 직후 당국은 긴급 재난 문자를 발송했다. 재난 문자는 실시간 우회도로 안내와 접근 통제 정보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처럼 큰 재난에 대한 경보가 울린 순간에도, 적지 않은 시민들은 시스템의 수신 망에서 스스로 이탈했다. 현장 주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서소문 고가 붕괴 인근에 거주하는 50대 시민은 "어차피 평소와 똑같은 내용이겠거니 하면서 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알림 소음에 지쳐 스마트폰 설정에서 재난 문자를 아예 꺼두었다는 40대 직장인과 외국인 유학생들의 고백도 이어졌다. 시민들은 생명줄이 되어야 할 재난 문자를 외면하고 있다.
시민들의 이러한 반응은 단순한 안전 불감증이 아니다.
단기간에 과도한 정보가 쏟아지며 발생하는 경보 피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서소문 고가도로 사고가 발생한 26일부터 30일까지 재난 문자는 총 25건에 발송됐다. 사고 당일인 26일에는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1건을 집중적으로 발송했다. 시민들의 스마트폰 경보음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서소문 재난문자 시간대별 발송 히트맵 (발송건수가 많을수록 진함 / 총 발송 건수: 25건)
사건 당일, 당국이 발송한 25건의 문자 내용은 사고 수습과 교통 통제, 시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필요한 정보들이었다. 문제는 유사한 내용의 반복이다. 전체 25건의 재난 문자 중 23건이 열차 운행 통제와 그에 관한 업데이트 내용이었다. 사고 현장과 거리가 멀어 관련성이 낮거나, 해당 노선을 이용하지 않는 시민들 처지에서는 비슷한 내용의 알림을 며칠에 걸쳐 반복적으로 받게 된 셈이다. 시민 안전과 교통 혼잡을 방지하려는 당국의 선제적인 조치지만, 동일 정보의 광범위한 반복 전송은 '재난 문자 피로도' 문제를 낳았다.
재난 문자는 국민 안전을 위한 핵심 경보 수단으로 많은 이용자들이 재난 문자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반면 포털 검색어에서는 ‘재난 문자 끄기’, ‘재난 문자 차단’과 같은 연관 검색어가 함께 나타난다.
실제 이용자들의 솔직한 인식을 살펴보기 위해 유튜브 API를 활용하여 '재난 문자' 관련 댓글 65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댓글 65건 중 47건이 재난 문자에 대한 불편에 관한 댓글이었다. 세부적으로는 알림과 설정의 불편을 언급한 댓글이 26건으로 가장 많았다. 과도한 발송과 피로감을 언급한 댓글도 17건으로, 대부분 알림 설정의 불편과 과도한 발송에 대한 불만을 주로 언급했다. 구글 트렌드에서 최근 3개월 동안 ‘재난 문자’와 함께 검색된 검색어를 조사한 결과, ‘끄기/차단’이 전체 검색어 중 3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부 재난 문자 이용자들의 불편과 피로감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재난 문자에 관한 불편함과 실제 사용 인식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5월 12일부터 31일까지 재난 문자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는 한국인 38명과 외국인 51명 등 총 89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 약 43%가 재난 문자 알림으로 인해 불편을 경험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재난 문자를 수신받았을 때 첫 문장만 읽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71%였다. 재난 문자를 확인은 하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않고 넘어가는 사용자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는 결과다.
그렇다면 긴급재난문자에 이토록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정안전부의 ‘재난 문자방송 송출 현황’ 공공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시민들이 체감하는 피로감의 실체가 명확한 수치로 증명된다. 2019년 전국 기준 911건에 불과했던 재난 문자 발송량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2020년 5만 4,734건으로 무려 60배가량 폭증했다. (출처 : 행정안전부) 더 큰 문제는 감염병 위기 단계가 하향된 이후에도 발송량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확진자 동선 안내가 빠진 자리를 광범위한 '실종자 수색'과 '단순 기상 안내'가 채우면서, 시민들은 여전히 과도한 알림의 홍수 속에 놓여 있다.
현재 긴급재난문자의 과도한 발송을 막기 위해 실종자 수색 관련 문자는 경찰청이 ‘실종 경보 문자'라는 문자 유형으로 별도로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종 안내 문자로 인해 체감하는 재난 문자에 대한 피로도는 해소되지 않았다.
※ 지도 위에서 마우스 스크롤을 하시면 확대/축소가 가능합니다.
서소문 재난문자 시군구별 발송 현황 (수도권) / *파란색 마커는 사고 지점 근처의 주요 지하철역(충정로역, 시청역, 서울역, 서대문역)을 나타냅니다.
서소문 고가도로 붕괴 사고 당시 발송된 재난 문자를 살펴보면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붕괴가 일어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20건의 재난 문자가 발송됐다. 주목해야 할 점은 붕괴 지점으로부터 약 70km 떨어진 경기도 이천시에도 ‘14건’의 재난 문자가 발송됐다는 점이다. 이천시에는 이번 사고로 인해 운행 차질이 생긴 경의중앙선이나 1호선 등의 철도 노선이 지나가지 않는다. 이천 시민은 자신과 관련 없다고 생각되는 다른 지역의 사고와 관련된 재난 문자를 14건이나 받았다. 이러한 반복은 수신자의 심리에 누적된다. 자신과 무관한 위험 경보를 거듭 받게 된 시민은 재난 문자의 진동음과 경고 화면 자체에 둔감해지며, 결국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재난이 닥쳤을 때조차 그 문자를 또 하나의 알림으로 흘려보낼 위험에 노출된다.
사진 출처: 세이프타임즈
해당 지점들을 재난 문자를 송출,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재난정보통신과의 재난 문자 운영담당 주무관과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재난 문자의 피로감으로 첫 문장만 읽거나 읽지 않고 있습니다. 해당 문제를 해소하려는 방안으로 진행하고 계신 것이 있는지?
“반복적인 내용은 작년에 중복, 반복 발송 금지 규정을 신설하고 매 분기마다 재난문자 사용기관 교육을 통해 자제하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 제시된 한 두 줄만 보고도 나에게 필요한 정보인지 아닌지 파악이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따라서 앞에 중요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재난 문자 발송에 대한 불편함의 원인으로 '현재 위치와 관련 없는 문자'라는 응답이 매우 자주 나타났습니다. 해당 불편함에 대해서 고려 중인 해결 방안이 있는지?
“현재 재난 문자는 기지국 기반으로 송출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시도 및 시/군/구 경계 지역의 분들께서는 위치와 관련 없는 문자를 받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송출 범위를 적게 하면 경계 지역분들 중 못 받으시는 분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경계보다 좀 더 넓은 범위로 송출하여 빈틈없이 재난 문자를 수신하도록 함으로써 생명, 신체, 재산을 지키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통해 행정안전부 측 역시 재난 문자의 반복적인 내용으로 인한 피로도를 인지하고 있으며,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 5월 12일부터 31일까지 구글폼을 통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로 볼 때, 반복적인 재난 문자 송신으로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재난 문자의 신뢰도는 여전히 높았다. 재난 문자는 재난과 위험에 대한 정보를 얻는 창구로 가장 쉽고 빠르게 접근할 수 있고, 국가에서 운영, 관리하고 있다는 점이 이유로 분석된다.
즉, 긴급재난문자는 ‘재난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로서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빈번한 문자 발송으로 인한 정보 과잉 및 일상적 피로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안전 재난 문자의 내용은 재난의 성격으로 분류하기에 모호하거나 수신자에게 다소 불필요한 정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논문의 재난 경보 텍스트 상관관계 분석에 따르면, 재난 경보의 관련성은 사용자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실제 위험 지역과 수신자 위치를 기반으로 필수 대상에게 경보를 우선 전달하는 시스템의 강화가 필요하다.
일본 J-Alert Safety tips 앱 메인 화면 사진, 이미지로 각 항목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전국 순시 경보시스템인 J-Alert는 필요한 정보들을 간략하게 초 단위로 자동 발송한다. 휴대전화 문자에만 의존하지 않고 TV, 라디오, 지자체 방송, 전광판, Safety tips 앱 알림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재난 문자로 전송하는 재난 위험도 기준이 높게 설정되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재난을 중심으로 경보를 발송한다. 재난 문자 발송 기준 자체를 높게 설정한 결과다.
수신자는 정보 유형별로 수신과 차단을 선택할 수 있으며, 다중 전달 체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위험도, 관여도에 따라 전달 경로를 구분한다면, 시민의 피로감을 줄이면서도 긴급재난문자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사례는 TV, 방송, ‘국민안전24’와 같은 모바일 앱 등을 통한 다중 전달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기상, 기후, 실종자 관련의 안전 재난 문자의 경우, 수신자의 피로도를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재난 특성과 위험 수준에 따라 채널을 구분하고, 발송 기준을 더욱 명확하게 세분화하여 불필요한 중복 발송을 줄일 필요가 있다. 위급, 긴급재난문자의 경우에만 재난 문자로 발송하도록 하고, 비교적 가벼운 안전 재난 문자의 경우는 ‘카카오톡’, ‘안전디딤돌앱’ 등 모바일 앱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재난 문자 속에 살고 있다. 정보는 필요한 사람에게 제때 닿아야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시민에게 피로가 아닌 정보를 줄 수 있는 재난 문자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